2009년 09월 23일
이틀만에 돌아오다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고양이나 개를 키운다.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심지어 어떤 이는 본인의 숫가락을 개와 같이 이용하는 장면도 TV를 통해 본 적도 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을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비위가 상해서이다.
내 경우 개인적으로 실내에서 동물을 키우는걸 싫어한다. 냄새와 흩날리는 털들때문에 비위생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며 얌전치 못한 애완동물이라면 그녀석들로 인해 벌어지는 혼잡함과 부산스러움이 싫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자신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이웃 사람들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볼 때도 왠지모르게 불편한 심기가 들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얼마 전, 집에서 키우는 개로 인해 눈시울을 붉힐 만한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추석을 앞두고 지난 주말 벌초를 다녀왔더랬다. 매년 하는 벌초지만 이번엔 좀더 수월하게 끝낸 듯 싶어 화성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 집으로 오는데 출발한지 얼마 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떠나가는 내 차를 보고 집 마당에서 키우던 보람이(아버지 말로는 풍산개와 진돗개 피가 섞인 녀석이라는데 성견으로 백구다)가 급작스레 따라가더라는 것이다.
보람이는 부모님이 연거푸 불러도 내쳐 달아나듯 내 차를 따라왔고,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차를 멈추려 할까 하다 금방 돌아오겠지 하며 무심히 기다리셨단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흘러도 보람이가 돌아오지 않자 나한테 전화를 해서 혹시 뒤따라가던 보람이를 보았는지, 어느 길로 집에 가는 중인지 물으신거였다.
순간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만할 때 데려와서 성견으로 클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묶어놓고 키운 보람이였다. 최근 들어 풀어놓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지만 막상 풀어놔도 근처 산이나 동네만 휘젓고 다니다 얼마 지나면 집으로 돌아오던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동네 앞 큰길로 보람이가 나갔다면 차를 피할 줄 모르기에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니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더란다. 동네 근처를 둘러봤지만 하다못해 차에 치인 흔적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 가득한 우려만 내 보이셨다. 아내와 나 역시 십중팔구 어디선가 차에 치여 죽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며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화요일 저녁,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기르던 개가 없어지니 집안이 쓸쓸해 풍산개 새끼를 사오셨단다. 저녁무렵 새로 들인 강아지한테 밥을 주러 마당에 나갔는데 문 밖에서 끄윽~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무언인가가 눈에 띄어 나가보니 보람이가 문 앞에서 털북숭이 꼬리를 흔들며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어디를 헤매고 왔는지 몸에는 가시덤풀이 여기저기 붙어있고 배는 홀쭉해져서 돌아왔더라는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거졌다. 그래도 정들었던 녀석이 밖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꼬박 이틀만에 여기저기 헤매다 기어이 제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이다. 엄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새로 강아지 안 들이는건데 이 강아지는 어떻게 하냐면서도 기분좋다는 듯이 말하신다.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지않아 다행이고 별탈 없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고, 그리고 그리 멍청한 개는 아닌 듯 싶어서 기쁨이 더했다. 이 녀석은 녀석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 by | 2009/09/23 14:33 | 끄적이기...雜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