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이 빨갱이냐?

용산참사 관련 무성한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그 중 많은 댓글들이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며 그들의 죽음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저 무뇌아들의 악성 댓글도 있겠지만 정치적 목적의 악플도 있으리라 보여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건강한 사회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지나치리만큼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철거민들을 향해 냉소와 손가락질만 해대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사례를 들어 철거민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기 한 가족이 있다. 대대로 가진 것 없는 무산자 계급인지라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게 힘든 가족이다.
농촌에서는 일궈먹을 땅이 없는지라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 도시로 올라왔다. 하다못해 공장일, 음식점 서빙, 막노동 등 뭐라도 일거리가 있겠지 하고 무작정 상경한 것이다.

처음엔 월세방에서 시작해 두 부부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전세로 늘리고... 그리고 드디어 교통 불편하고 살기편한 동네는 아니지만 달동네에 허름한 제집을 장만했다. 내집마련 꿈을 이룬 것이다.

집마련을 위한 비용이 안들어가니 더 살맛나지 않겠는가? 두 자녀도 학교다니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모닮아 잘 버티며 네 가족 근근히 살아가며 행복이라는 것을 맛볼 즈음....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 허름한 집도 제집이 아닌 전세거나 월세로 사는지라 최소한 그들보나 나을 것이란 기대가 그 부부에게도 생겼다.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멋진 새집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품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조합이 생기고 각 집집마다 도장을 받으러 다닌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부부같은 사람들이 희망을 품어보기엔 분양가가 너무 높다. 도저히 자기네 형편으로는 보상비와 딱지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차액을 감당할 길이 없다. 현재 사는 집을 팔고 돈을 더 보탠다 하더라도 워낙 달동네이고 허름한 집이라 다른데 집 살만한 비용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자~~ 여기서 선택이다. 다시 월세, 전세로 들어갈 것인지, 아님 그래도 허름하나마 평생 집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여길 택해 재개발에 반대할 것인지. 다행이 반대가 높아 재개발이 취소된다면 불행중 다행이다. 그러나 왠만하면 재개발 추진사업, 거의 이뤄진다. 땅 가진자들의 투기 욕심과 건설사, 분양사들의 횡포에 대부분 재개발 추진된다.

그 부부가 아무리 반대성명을 낸다 하더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지금껏 일궈온 가정의 행복이 깨져버리게 생겼다. 다시 집 없는 설움을 안으며 빈곤의 깊이가 더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무주택자는 곧 빈곤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며, 이를 지원해줄 복지시스템과 혜택은 거의 전무하니까. 결국 마지막 희망은 최소한 생계를 위한 보상비를 더 받는 것 뿐이다. 그러나 택도 없다. 구청, 서울시, 정부, 분양사, 건설사 등등 해당되는 모든 곳에 하소연해봐도 콧방귀만 뀔 뿐이다. 아예 듣지도 않는다. 왜냐? 관청이나 정부는 개인간의 문제일 뿐이며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핑계만 대기 때문이며 건설사 분양사는 자기네 이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다.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사람들 모아 시청앞이든 어디든 달려가 확성기 틀어대고 부르짖는다. 제발 그냥 이대로 살게 해달라고.

전세, 월세로 사는 사람들은 집 주인의 집 비워달란 요청에 코딱지만한 이주비만 받고 하우스촌이든 다른 달동네든 떠나야만 한다. 그네들을 돌봐줄 행정력, 기구, 법령, 그 어디에도 없다. 철저히 소외된, 이 사회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의 깃털같은 존재감과 그들의 한숨과 눈물만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이 글이 과장같나? 이 글이 감정에 치우친 소설같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과서의 사회책을 볼게 아니라 두눈 똑바로 뜨고 시민단체나 진보언론의 문을 두드려라. 아주 생생감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이러한 재개발 모습, 지난 70년대부터 지금 2010년까지 몇십년간 이어져 온 재현이다. 현재도 진행중이거니와 앞으로도 이러한 모습,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현재와 같은 재개발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삽질밖에 할 줄 모르는 쥐새끼가 청와대에 앉아 있는 이상, 딴나라당 국개의원들이 과반석을 차지하고 딴나라당이 지방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이상, 절대 바뀌지 않을 풍경이다.

저러한 절박함에 머리띠 두르고 길에 나섰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빨갱이라고 헛된 개소리 하는 작자들... 너네들 눈에는 그들이 뭐로 보이더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만약 최소 몇십억원대 자산가라면 백보 양보해서 "그래 너 잘났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욕하며 당신이 한나라당 찍는거 뭐라 안하겠다. 어차피 당신같은 인간들이야 너네들만의 삶을 꿈꿀테고 우리는 보이지도 않을테니.

그런데 정작 본인도 없이 살면서 뭣에 혹했는지, 사주를 받은건지, 세뇌를 당한건지, 아님 정말 지지리도 무식해서 아무것도 몰라 그러는건지 그들을 욕하는 사람들은.... 다시 배움을 통해 깨우치든, 파렴치한 행위를 관두든, 자신의 무식을 한탄하며 그냥 그렇게 살다 저세상 가든 맘대로 해라. 너희같이 지독한 무식한 행위로, 그래서 계속 딴나라당 밀어주는 바람에 너네들은 물론 나같은 시민도 피해를 보게 되는게 그저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노만 치밀 뿐이다.

이래도 그네들이 빨갱이며 도심의 테러리스트냐? 살기위해 죽을 각오로 올라간 망루에서 허망한 죽음을 당한 그들에게 과연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할 권리가 너한테 있더냐? 그런말 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더냐? 난 차마 내 딸이, 내 아내가, 내 아는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도저히 못하겠던데 말이다.

그런 댓글 올리는 작자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내용이 좀 길어 아예 보다가 포기하는게 태반이겠지?) 본다면 스스로 뉘우쳐라. 모르면 배워라. 그리고 느껴라. 느꼈으면 분노해라. 그래야 사회가 바뀐다.

by 투덜이 | 2010/01/15 18:16 | 프로파간다 | 트랙백 | 덧글(3)

첫 발을 떼다.

오늘로써 노은이가 태어난지 323일째...

이미 벌써부터 한동안 서서 재롱을 부리던 노은이가 드디어 첫 발을 뗐다. 제법 서있는 자세는 잡혀있지만 기우뚱하며 차마 발을 떼지 못하던 노은이였는데 오늘, 대 여섯 발자국을 움직이며 내가 손에 쥔 물건을 가지려 했다.

친구들과 한잔 하느라 집에 들어간 시간이 11시였는데 그때까지도 엄마와 놀던 노은이가 아빠 왔다고 웃어주는 모습에 열심히 살아갈 이유를 매번 느끼게 해준다. 그런 노은이가 아빠 손에 놓인 장난감을 쥐어보겠다고 마침내 몇 발자국 움직이며 내게로 왔을 때.... 노은이가 스스로 인생의 첫 발을 뗐을 때... 부모로서의 감격이 이런 것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스스로 걷는 법을 알게 됐으니 조만간 기는 것보다 걷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만큼 엄마아빠는 혹시나 있을 사고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게다.

노은이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매 순간순간, 노은이가 건강한 가치관으로 올곧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순간,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순간들이 아빠로서 커가는 내 모습일 것이라 생각된다.

by 투덜이 | 2010/01/14 23:50 | 노은이의 시간 | 트랙백 | 덧글(0)

아바타의 흥행과 개발바람의 차이

영화 '아바타'를 봤다.
잔뜩 기대를 하고 본 탓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헐리웃 영화의 스케일과 그 상상력, 그리고 재미까지 더하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영화일게다.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주인공 제이크가 아바타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나비족 족장 딸인 네이티리를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과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 전사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마지막 대결투장면, 이렇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된다.

영화는 애초 생각과 달리 인간과 나비족 간의 전투 장면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만 할애했다. 거의 2시간 이상을 왜 인류가 판도라 행성에 왔는지, 와서 무얼 하려 하는지, 나비족은 어떤 종족인지, 그리고 그들이 왜 싸울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해 간다.

이런 영화 구성으로 누군가는 다소 지루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 영화가 비록 진부적인 소재를 다뤘다할지라도, 또는 그 표현방식이 식상하다 할지라도 자연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영화로써 받아들이고 싶다.

가장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첫 만남이다. 판도라 행성의 밀림에 사는 사나운 동물에 쫒겨 싸우다 결국 자포자기할 때쯤 네이티리의 등장으로 겨우 목숨을 구한 제이크. 제이크는 네이티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만 네이티리는 "너 때문에 그들을 죽였다"며 "결코 감사할 일이 아니"라고 화를 낸다.
우선 이 장면에서 자연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 할 존중과 경외감이 어떠해야 하는지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동물을 죽이는 사냥이 엔터테인먼트로까지 치부되는 지구상의 인류가 진지한 의문을 갖고 되새겨봤으면 하는 장면이다.

나비족은 그들의 모든 삶을 자연과 결부시킨다. 그들의 탄생과 죽음, 삶 모든 것이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나비족은 심지어 나무, 동물, 꽃들과 교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네트워크를 이뤄간다. 그들에게서 숲은 곧 생명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그들이 말하는 만물의 신 '에이린'은 결국 거대한 자연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 후반부... 킬로그램 당 2천만불을 호가한다는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해병대는 온갖 화기를 퍼부어 나비족의 삶의 거처인 3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를 넘어뜨리고 만다.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온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울부짖는 나비족들의 모습이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철거민들을 몰아내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 오버랩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 장면에서 과연 영화를 보는 수많은 이들은 무얼 생각할지 정말 궁금해졌다. 온통 개발만을 외치고 개발을 통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팽배한 사회에서, 그리고 개발논리를 옹호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보면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몰이해와 정복욕, 그리고 탐욕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며 그들에게 전달될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인류와 자연은 하나라는 것을,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잔인하고 자연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천박하게 박혀있는지를 말이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타 종족의 삶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연의 가치를 일순간에 황폐화시켜 버리는 인류의 철저한 자본주의화를...

수질개선을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온통 왜곡과 날조로 얼룩진 4대강 사업을 벌이는 작자들과 돈만을 쫓아 무자비한 개발바람을 일으키는 건설사, 국토부, 땅주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느끼는 점이 무엇일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내 이 의문은 가시지 않고 결국 블로그에까지 글을 올리게 됐다. 여전히 이 의문은 남아있고 현재 아바타 관람객은 1천만명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by 투덜이 | 2010/01/10 10:26 | 끄적이기...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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